역사속의선조




신아(申雅) 밀직공파조(密直公派祖)
작성자 : admin 작성일 : 2016-11-07 13:25:32       조회수 : 4041 파일 :

 

신아(申雅) 밀직공파 파조(密直公派 派祖)

 

 

 

시대

고려

생몰년

미상

본관

평산(平山) 15세손(15世孫)

파계

밀직공파 파조(密直公派 派祖)

담수(?)

한천자(漢川子)

활동분야

문신

 

 

신아(申雅)에 대하여

 

 

신아(申雅)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담수(?), 호는 한천자(漢川子). 국자감박사 좌대언(國子監博士左代言) 중명(仲明)의 증손이고, 전리판서(典理判書) 수문전대제학(修文殿大提學) (?)의 손자이며, 이부상서 익지(翼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나주정씨(羅州鄭氏)로 홍의(洪義)의 딸이다.

1352(공민왕 1)에 진사에 등제한 뒤 1357년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이 되었다. 우왕 초기에 판사를 역임하고, 1385(우왕 11) 우왕이 집에 행차하였을 때 딸을 비로 바쳤다.

1387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올라 딸이 우왕의 총애를 받고 있음을 기화(奇貨)로 남의 노비와 전토(田土)를 빼앗는 등 비행을 일삼다가, 왕의 미움을 받아 아들 효온(孝溫)과 사위 박보령(朴保寧) 등과 더불어 장형(杖刑)을 받고 각산(角山)에 유배되었다.

1388년 딸이 정비(正妃)에 봉하여지고, 그해(창왕 1) 6월 강인유(姜仁裕최천검(崔天儉조영길(趙英吉왕흥(王興오충좌(吳忠佐) 등과 더불어 제비(諸妃)의 아버지인 까닭으로 원지(遠地)에 유배되었다.

13888월 창왕의 생일을 맞아 석방되어 전리(田里)에 방귀(放歸)되었고, 1389(공양왕 1) 예부상서·국자감좨주(禮部尙書 國子監祭酒)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아니하고, 평산·한천(漢川)에 퇴거하였다.

1391년 우왕재위 때에 법을 어기고 기강을 문란하게 한 죄로 이성계(李成桂) 일족인 낭사(郎舍) 허응(許應) 등의 탄핵을 받아 전주에 유배되었다.

죽은 뒤 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에 배향되었고, 그뒤 동양서원(東陽書院)에 추배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平山申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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