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선조




신호(申浩) 사간공파조(思簡公派祖)
작성자 : admin 작성일 : 2016-11-07 13:19:22       조회수 : 3548 파일 :

 

시대

고려

생몰년

고려공민왕 ~ 1432년(조선세종4)

본관

평산(平山) 15세손(15世孫)

파계

사간공파 파조(思簡公派 派祖)

선오(善吾)

시호

사간(思簡

활동분야

문신

 

 

신호(申浩)에 대하여

 

집현전한림(集賢殿翰林) 겸 직학사(直學士) ()의맏아드님이시다.

고려공양왕(恭讓王)때 지신사(知申事)로 왕명(王命)의출납을 맡아보다가 고려(高麗)가 국운(國運)이 쇠()하여 이성계(李成桂)에게선위(禪位)할때 공양왕이옥쇄()를 차마직접줄수없다하여 지신사(知申事)인그에게임의(任意)로처리하라고하니 울며말하기를

(()이목숨을 바칠지언정 어찌옥쇄를 빼앗는자에게 바치리까?) 하며 옥쇄를부둥켜안고있으니, 이성계(李成桂)가 위엄(威儼)을떨치며 주변신하(臣下)에게 명()하여 힘으로 빼앗으려드니 부득이 역부족(力不足)이라 옥쇄를땅에 내리쳐서그일각(一角)이조각이났다.

 

이를보고있던 고려공양왕은

(과연그대는참다운고려의신하로다) 라고하였으며

이성계역시 이를지켜보고있다가놀라며 (진실로 그대는고려의 충신(忠臣)이로다)라고 극찬하고 즉위초에 그를불러 전리판서(典理判書)의 벼슬에 임명하였으나 불사(不仕)의 뜻을밝히고 고향인평산(平山)으로 낙향(落鄕)하려하자,태조(太組)이성계가 치서(致書)하여 내가한양(漢陽)으로 가려하니 옛봉우의정()으로 잠시 강()가에서 상면(相面)했으면 한다는 내용을전했다.

 

그는소관야복(素冠野服)으로 갈아입고 배를타고강가에서 기다리니 태조(太祖)이성계가 출영하여 그의손목을잡고 예()로써 대하여옛정을나누며 국사(國事)에 대한정담(政談)은일체불언(不言)하고 ,()를읋고 술을권하며 바둑()을두고 지내다가 이별할즈음에 그가 태조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어제의 이시중(李侍中)이요,오늘날은 새나라의 국왕이고 나는 어젯날의 신지신(申知申)이요,오늘날은 이나라의 신하(臣下)이니 다시금 무슨할말이있사오리까?

 

또한 평산(平山)은 고려조(高麗朝)에서 봉해준 성관향(姓貫鄕)이라 퇴거(退居)하여 옛뜻을 잊지않고 지키며 항상 자손(子孫)을 계()로써 훈육(訓育)하며 생()을 마칠까하옵니다)

하고 고향(故鄕)으로 돌아가서 자손(子孫)들에게 과거(科擧)에 나가지말고 좋은벼슬을 취()하지말라고하였다.

 

훗날부음(訃音)을 전해들은 태조(太祖)이성계가 슬퍼하며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추증하고 사간(思簡)이란 시호(諡號)를 내렸다.

 

벼슬을취하지말라는말씀으로 2~3대에걸쳐서 자손들이큰활동을하지않으셨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리스트

신효(申曉) 정언공파조(正言公派祖)
신효창(申孝昌) 제정공파조(齊靖公派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