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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서원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8-21 14:50:35       조회수 : 2541 파일 :

덕양서원德陽書院

 

곡성현谷城縣에서 동남쪽으로 오리쯤 되는 지점에 있는 천덕산天德山 아래 금계錦溪위에서 교룡蛟龍을 굽어보는 듯한 사우祠宇가 있는데, 방명坊名은 오지梧枝(지금 德山郡 梧谷面 德山里). 사우祠宇의 액호額號는 덕양이니, 곧 고려삼중대광태사개국 장절공 신숭겸 三重大匡太師開國 壯節公 申崇謙을 향사하는 곳이다.

무릇 장절공께서 이 고장에서 태어났으므로, 선조22(기축, 서기 1589)에 후손인 현감 옥이 관찰사인 이광李光 및 내외 후손들과 더불어 서로 합심하여 창건한 것이다. 그런데 4년 후인 임진년에 왜가 갑작스레 침입해 오더니 정유재란丁酉再亂에 이르러서는 학사學舍와 재사齋舍가 모조리 불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오직 사우祠宇와 위패位牌가 다행히 보존되니 사람들은 모두 이르기를 장절공의 영령이 가금呵禁한 바일 것이라 하였다.

계묘년(선조36 서기 1603)에 서평부원군西平府院君 한준겸韓浚謙이 본도 관찰사로 와서 이 말을 듣고 기이히 여긴 나머지 묘우廟宇를 중수하여 새롭게하고 후손 문정공文貞公 이 이 사실을 기록하였다. 다만 학사學舍가 복구되지 못하고 재숙齋宿할 곳이 없었더니 정사년(서기 1617)에 현감 최호崔皥가 동우棟宇를 중설하였으되 경우 흙 바르기에 그쳤었다. 얼마 후에 후손 동평군 경유 東平君景裕가 호남절도사로 와서 재력를 부급扶給하여 역사役事를 마치게 하였다.

그 후로 50년이 지나는 동안에 강당이 기울어져서 매양 풍우를 가릴 수 없게 된 것을 걱정하게 되었더니 다행히 후손 문숙공 정文肅公晸이 본도 감사로 와서 공정工程을 계획하고 재정을 경리經理하여 동우棟宇를 새롭게 하였으며 평천군 완 平川君 琓이 상량문上樑文을 찬하였다.

숙종肅宗 21년 을해(서기 1695)에 본현 사림士林의 소청疏請에 따라 은액恩額이 선사宣賜되고 또 복호卜戶 30호와 전지 삼백결三百結을 내리었으며 예관을 보내어 치제致祭하였다.

정조正祖 15년 신해(서기 1791)에는 강당이 화재를 입어 개건改建되었다 한다. 병진년(정조正祖 20 서기1796)에 현감 이윤명李潤明이 향중鄕中의 본손 및 외손들과 더불어 모책謀策하여 별고別庫를 처음으로 세웠고 순조純祖 34년 갑오(서기 1834)에는 후손 장흥부사 재익在翼이 다사多士 및 본손들과 더불어 송사訟事를 일으켜 원림園林에 범장犯葬한 무덤들을 파내게 하는 동시에 재력을 모아서 쓰러져 가는 재사齋舍를 수즙修葺하며 전토田土 가운데 문권文券만 남고 땅을 잃어버린 것들도 모조리 추심하였는데 후손 문천공 재식 文淸公 在植이 그 전말을 적고 당시의 관찰사 김흥근金興根으로 하여금 서하게 하였다. 이 때 후손 전주영장 석호錫祜 또한 조력助力함이 많았다.

헌종憲宗 5년 기해(서기 1839)에 후손 병사 성호性浩가 사우祠宇를 수즙修葺하고 기문記文하였으며 갑진년(서기 1844)에는 후손 판서 헌이 우수사右水使로 있으면서 조력하여 신문神門을 수보修補하였다 철종哲宗 5년 갑인(서기 1854)에 후손 판서 석희錫禧가 순천부사로 있을 적에 헌과 더불어 도모 설계設稧하여 별고別庫의 부족을 돕고 원우院宇을 수선修繕하는 비용에 대비케 하였는데 종계宗稧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철종哲宗 9년 무오(서기 1858)에 후손 승지 석년錫秊이 임실현감이던 때 이첩移牒하여 투총偸塚을 파게 하고 도형圖形하여 원림園林의 경계境界를 확정하였으며 이 때 강당을 수리하고 신문神門 3칸도 개건하였다. 철종哲宗 13년 임술(서기 1862)에 분향례焚香禮를 복구하고 계해년(서기 1863)에 향음례鄕飮禮를 행하니 학문學問을 강수講修하는 시설이 이 때부너 비롯된 것이다.

고종高宗 8년 신기(서기 1871)에 조령으로 인해 서원이 훼철되자 동 18년 신사(서기 1881)에 후손 절도사 석희奭熙가 기적비紀蹟碑와 비각을 건립하여 서원 유지遺址를 보전해오다 순종純宗후 갑술년(서기 1934)에 본도에 거주하는 후손들의 탄성殫誠(참된 정성)으로 서원을 복설復設하였다.

그 후 서기 1956년 기성회장 봉식鳳湜등이 신덕재愼德齋을 건립하는 한편 서원 보수공사를 마치고 1973년 원지院誌을 발행했다

1981년 전남도 화수회 세풍世豊회장과 형철亨澈총무 등이 대종중과 협력하여 덕양서원·용산단 일원을 전남도 지방기념물 제56호로 지정받은데 이어 1989년부터 1998년까지 10여년에 걸쳐 인규仁圭, 현칠鉉七, 상균相均, 형철亨澈 4대 도유사가 상호 협력하여 국고보조와 대종중을 비롯한 전국 종원들의 표성금으로 강당 연서재, 신덕재, 외삼문, 전사청, 관리사, 화장실 등을 중건하고 사우 내삼문, 기적비각을 개와改瓦 단청하였으며 층계석축, 광장포석 및 조경, 내외담장 이축, 주차장을 완비하는 등 대역사를 단행하고 원지院誌3집을 간행했다.

 

- 소재지 : 전남 곡성군 오곡면 덕양서원길 42(덕산리36)

-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56

- 향사일 : 2, 8월 중정일(仲丁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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